“일할 의지도, 건강도 충분한데… 자리를 잃는 건 너무 이릅니다.”
– 박영희(63세), 퇴직 후 재취업을 준비 중인 전직 사무직 노동자
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.
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노동시장과 제도는 ‘60세 이후는 은퇴’라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.
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<초고령 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방안> 보고서에서
고령층 인력을 노동시장 내에서 ‘계속 활용’하는 구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.
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세대가 바로 40~60대, 즉 4060세대다.
정부는 2016년 법정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바 있다.
당시에는 ‘고령층 일자리가 늘어난다’는 기대가 컸다.
실제로 고령층 고용률은 단기적으로 증가했지만,
대기업·공기업·유노조 중심으로 혜택이 집중되었고,
청년 일자리 위축, 조기 퇴직 증가라는 부작용이 뒤따랐다.
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자 1명을 더 고용할 때 청년 근로자는 0.4~1.5명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다.
결국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와 고용 경직성을 그대로 둔 채
정년만 연장한 정책은 ‘양쪽 세대 모두를 힘들게 만든 셈’이었다.
보고서는 일본 사례를 제시하며
‘단계적 접근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.
일본은 1998년부터 2025년까지 약 30년에 걸쳐
정년 연장을 점진적으로 추진했으며,
단순한 나이 조정이 아니라 재고용 제도와 임금체계 개편을 병행했다.
특히 ‘60세 정년 → 65세 고용확보 → 70세 취업기회 확보’라는
로드맵을 그리며 점진적으로 의무화해
고령층과 청년층 간의 충돌을 줄이고, 노동시장에 유연한 충격 흡수 구조를 만들었다.
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법정 정년 연장보다 재고용 제도의 확산이 더 실효성 있다고 평가했다.
단, 이 역시도 성급하게 법제화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
유인체계를 먼저 도입하고, 점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.
이 방식은 임금체계 개편과 근로조건 유연화를 유도할 수 있어
기업 부담을 줄이고, 고령층에게는 지속적 일자리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.
보고서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놀랍다.
65세까지 계속근로가 가능할 경우, 향후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0.1%p(총 0.9~1.4%p)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.
개인 소득 측면에서도, 현재 정부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때보다
월 179만 원 더 벌 수 있고, 65세 이후 연금 수령액도 월 14만 원 더 많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.
지금 50대 후반, 60대 초반에 접어든 4060세대는
부양해야 할 가족은 줄어들고 있지만,
자기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첫 중장년 세대이기도 하다.
그렇기에 이들에게는 ‘퇴직’이 아니라
‘재설계’가 필요한 시점이다.
일할 의지도 있고, 건강도 있고, 기술도 있지만
그 에너지를 쏟아낼 ‘제도와 기회’가 부족한 것이 지금의 문제다.
초고령사회는 멀리 있는 미래가 아니라,
4060세대가 지금 살아가는 바로 그 현실이다.
그리고 그들이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
곧 한국 사회가 더 오래,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핵심 전략이다.
“65세까지 일하면 연금도 월 14만원 더 많아진다” “고령층 계속근로, 한국 성장률을 연 0.1%p 끌어올린다” “고령자 1명 고용, 청년 1.5명 일자리 줄어…정년연장의 그늘”